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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을 당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또다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미국 제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의 이야기인데요.
초등학교도 못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지만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선택된 남자.
하지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재판을 받게 된 대통령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미국의 제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항목 | 내용 | |||||
앤드류의 출생 | 1808년 12월 2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 |||||
앤드류의 사망 | 1875년 7월 31일, 미국 테네시주 엘리자베스턴. | |||||
대통령 재임 기간 | 1865년 3월 4일~ 1857년 11월 3일. | |||||
주요 업적 |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일. 멕시코에 머물던 프랑스 세력을 몰아낸 일. | |||||
후대의 평가 | 흑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 최악의 대통령중 한명. |
앤드류의 어린시절.
1808년 12월 2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살던 아버지 제이콥 존슨과 어머니 메리 맥도너 사이 둘째로
태어난 앤드류 존슨 아버지는 여관에서 짐꾼 은행 관리인으로 일을 했지만 집은 너무 가난했고 심지어 아버지 어머니 둘 다 문맹이었다 합니다. 그러다 앤드류가 네 살이 되던 무렵 아버지는 물에 빠진 고용주를 구하려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앤드류와 형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방직과 세탁부 일을 하게 되죠. 어머니는
터너 더트리이라는 남자와 재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 후에도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그러다 보니 앤드류는 제대로 된 교육을 전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앤드류가 10대 중반이 됐을 무렵 어머니는
앤드류와 형을 한 재단사에게 돈을 받고 수습생으로 보내버리게 됩니다.
앤드류와 형은 그곳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하며 고생을 하는데 앤드류가 19살이 되던 1826년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가족들은 혹시나 재단사가 돈을 받으러 쫓아올 무서워 서쪽 테네시주 그린 빌로 이사를 가게 되죠.
앤드류는 그곳에서 그동안 배운 기술을 이용해 형과 함께 양복점을 열었습니다.
독학으로 글을 조금 배우긴 했지만 여전히 그때까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능숙하지 못했던 앤드류는
사람을 고용해 자신이 바느질을 하는 동안 옆에서 책을 읽게 했습니다.
이때 앤드류가 들음으로 본 책들 대부분은 세계의 위대한 연설과 미국의 헌법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이는 훗날 정치인 앤드류가 훌륭한 연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큰 자양분이 됩니다.
사랑을 하다.
그린빌에서 양복점을 하던 중 앤드류는 그 마을의 재화 공의자 여관 주인의 외동딸 엘리자 메카드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1826년 5월 20살이 된 앤드류는 18살 엘리자와 결혼을 합니다.
엘리자는 앤드류의 비해선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았기에 시간 나는 틈틈이 남편에게 읽기나 쓰기 수학 등을 더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돈을 관리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법도 알려주었죠.
그렇게 현명한 아내와 함께 낮에는 양복점을 운영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아간 앤드류.
그런데 둘 사이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이 중 아들 둘은 2, 30대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게다가 엘리자는 중년이 됐을 때 결핵에 걸리게 되는데 병세가 꽤 심해 거의 방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대통령으로 활동하는 중에도 거의 대중 앞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대신 큰 딸이 백악관의
안주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튼 앤드류는 결혼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양복점 역시
번창하며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아갑니다.
정치를 시작하다.
특히 새벽까지 책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양복점에 온 손님들과 토론을 하고 그러다 나중엔 지역의 토론회에도
참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지성인이 되어 갔습니다.
이웃들은 말 잘하고 똑똑한 앤드류에게 정치를 해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1829년 22살의 젊은 앤드류는 마을의 시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이후 그린빌 지역의 시장까지 역임하며 젊고 야심찬 정치인으로 서서히 인지도를 높여 갔습니다.
그러면서 1834년 부터 1838년 앤드류는 민주당 소속의 주의회 의원으로 활리 활동을 이어가는데 특히 서민이나 보통 사람의
권익을 옹호하고 남부의 대농장 계급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며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대표 정치인이자
탁월한 연설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이를 바탕으로 1803년엔 테네시주 하원 의원이 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이 무력 앤드류는 처음으로 돈을 주고 자신의 노예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1853년 엔 테네시주 주지사 1857년에 미국 상원으로 선출되며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으며 법안을 지지하며
빈곤층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져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또 한편으론 도피 예법과 노예 소유권을 지지하며 전형적인 남부 정치인으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생각의 변화
이처럼 남부 사람이었던 앤드류는 노예제에 대해 찬성을 하던 입장이었으나 나중엔 에이브러햄 링컨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로부터 20년 뒤인 1863년에 소유하던 노예를 모두 풀어 주었으며 테네시주의 군사 주지사로 있을 땐
노예들의 해방을 선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앤드류는 테네시에서 해방된 노예들에게
"자유의 대위에서 지지않는 에너지를 위해"라고 새겨진 시계를 감사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1860년 노예제 반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자 남부의
상원의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남부의 주들은 연방에서 탈퇴하는 초강수를 두게 됩니다.
앤드류의 정치적 기반인 트네 시도 연방 탈퇴를 선언했지만 앤드류는 상원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는데요.
노예제를 지지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연방이 더 중요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앤드류는 남부상 의원을 통틀어 혼자 자리를 지켰고 남부 연합 정부에 합류하라는 제안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남부 사람들은 그를 배신자로 보고 재산을 압류한 뒤 가족들을 테네시 밖으로 강제로
내쫓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앤드류는 오히려 북부에서 하루아침에 영웅 취급을 받게 되는데요.
군사 주지사가 되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은 이런 앤드류를 높이사 케네시 군사 주지사로 임명을 하죠.
얼마 후 앤드류는 노예 해방이 실질적인 전쟁 조치라고 생각하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863년 8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노예를 해방하고 테네시 시민들에게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주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호소했습니다.
1864년 재선에 도전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통일이라는 주제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부인이자 민주 당원이었던 앤드류를 지목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정당이 다른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 에이브러햄 링컨은
당당히 재선에 성공하고 앤드류는 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어쩌다 보니 에이브라함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 긴장이 된 건지
어땠는지 앤드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위스키를 마시고 취임식에 입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신 술의 양이 꽤 됐는지 사람들이 다 알아차 정도로 술에 취한 모습을 보였고 앤드류는
취임하자마자 주정뱅이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되죠.
대통령이 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앤드류를 적극적으로 감싸 주었지만 1865년 4월 15일 새로운 임기 시작 한 달
만에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을 당하게 되며 앤드류는 하루 아침에 미국의 제17대 대통령이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 58세 있습니다. 앤드류가 에이브러햄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은 앤드류가 에이브라함의 많은 정책들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임기 초반만 해도 이를 잘 실현시켜 나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앤드류는 해방된 흑인 노예들을 보호하는 정책보다는 떨어져 나갔던 남부주 다시 연방에 복원시키는 것을
더 중요한 목표로 삼으며 지나친 남부 유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게다가 해방으로 몸은 자유가 됐지만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흑인들의 실상에 무관심했습니다.
오히려 해방 노예들을 도와주는 법을 역차별이라고 생각해 지원 법안들을 폐지하기도 했죠.
심지어 의회에서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14차 수정안을 통과시켰을 때 남부 주들에게 그것을 비준하지 말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압도적인 의석수로 의회를 차지한 공화당의 급진파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의회에서 무효화시키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을 반복하며 대통령과 의회 사이는 갈수록 악화되는 길을 걷게 됩니다. 게다가 앤드류는 KKK 단 같은 인종 차별주의를 근간에 둔 불법 폭력 집단의 행태를 방치하는 상황까지
만들었는데 공화당에서는 앤드류를 인종 차별 주의자 인간쓰레기 당의 배신자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다.
그렇다고 남부로 지지를 받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게 여전히 남부의 배신자로 불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앤드류는 어느 쪽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힘없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죠.
그런 와중에 자신의 재건 정책에 반대하며 자신이 충성할 상대는 대통령이 아닌 의외라고 선언한 육군 장관 에드윈 스탠튼은 일방적으로 해고시켜 버리는데요.
결국 1868년 2월 하원은 인기을 위반하고 의회에 수치를 주는 등 11개 혐의를 이유로 앤드류를 탄핵하기 결정했습니다.
이전에도 대통령 탄핵안이 나온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탄핵 소추가 가결돼 상원까지 올라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죠.
당시 상원의원 중 공화당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앤드류가 탄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원에서 불과 한표 차이로 반대로 결정되며 앤드류는 가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생명은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 재선은 도전조차 하지 못했고 후임으로 남북 전쟁의
영웅 그랜트 장군이 취임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1869년 3월 앤드류는 백악관을 떠나 테네 시로 돌아왔지만 이후에도 정치에 대한 그의 관심은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같은 해 열린 미국 상원 의원에 출마한 것인데요. 하지만 여기서 낙선하고 1872년 하원 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또다시
낙선 그러다 결국 1875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에 성공했습니다.
상원의원이 된 앤드류는 자신의 다음 대통령인 그 정부의 정책과 부패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875년 7월 31일 67세의 일기를 끝으로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게 되죠.
총정리
앤드류는 임기 중 이루어 놓은 엄청난 성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평당 이 달러,
단돈 720만 달러에 구입한 것이죠. 또 먼로 독트린을 내세워 멕시코에서 정착되어 있던 프랑스 세력을 몰아낸 것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고종 때 일어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바로 앤드류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인데 당시 평양 국민의 의해 상선이 불타고 결국 이로 인해 나중엔 심미 양요가 발생하게 되죠.
이는 민간 상선이 제너럴 셔먼호 독단적으로 일으킨 만행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미국 역사가들과
대중들에게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연방 정부가 흑인들에게 보장한 권리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던 앤드류의 행적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하지 않고 계속 대통령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의 미국과는 모습이 좀 다르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 하지만 전쟁 후 혼란스러운 미국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해 최초로 탄핵 재판까지
받게 된 대통령 지금까지 미국 제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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