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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 전쟁 세대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현재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에 많은 영향을 준 먼로 독트린을 선언하며 미국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제임스 먼로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제임스는 특히 제1 대통령인 조지워싱턴과도 아는 사이이며, 3,4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과도 각별한 사이로 이들은 함께 민주 공화당을 창당한 후 차례차례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항목 | 내용 | |||||
제임스의 출생 | 1758년 4월 28일 , 대영 제국 버지니아 식민지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 | |||||
제임스의 사망 | 1831년 7월 4일 , 미국 뉴욕주 뉴욕 | |||||
제임스의 업적 | 먼로 독트린 선언으로 유럽의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함. | |||||
대통령 재임기간 | 1817년 ~ 1825년 , 미국의 제 5대 대통령 | |||||
후대의 평가 |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대부분임. |
제임스의 어린시절
1758년 4월 28일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에 살던 건축가이자 농부였던 아버지 스펜스 먼로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존스 먼로 사이에서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난 제임스 먼로 제임스의 집안은 17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에서 버지니아로 이주한 이민자 집안입니다. 그럼에도 노예와 제법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제임스의
가정환경은 제법 부유했다고 합니다. 제임스는 어렸을 땐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다 12살이 되어서야
캠벨타운에 있는 학교에 입학해 정규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농장 입을 돕느라 자주 학교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다 1772년 제임스가 15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게 되며 제임스와 형제들은 외삼촌 조셉 존스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판사였던 외삼촌은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과도 절친한 사이로 제임스는 그런 외삼촌을
많이 동경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상이나 진로에 있어서도 외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됐다고 합니다.
제임스의 학교 생활
1774년 17살이 된 제임스는 외삼촌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윌리엄 앤 메리 대학에 입학해 라틴어와 수학 등을 공부하고
외삼촌을 통해 토머스 제퍼슨과 조지 워싱턴 등 버지니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가 대학에 입학하고 1년 반 정도 지날 무렵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제임스는 스스로 대학을 중퇴하고 군 입대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1776년 초 비록 나이는 19살밖에 안 됐지만 제임스는 중위로 임관돼 독립군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을 따라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바로 1776년 12월에 있었던 뉴저지 트렌턴 전투에서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육군 대령까지 승진했는데 당시의 제임스를 보고 조지 워싱턴은 매우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젊은이였다고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제임스는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해밀턴 등이 써준 추천서를 들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오게 됩니다.
법학을 공부하다.
1780년 제임스는 외삼촌의 조언에 따라 다시 학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던 중 버지니아의 주지사로 있던
토머스 제퍼슨과 연결이 되어 그의 밑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임스는 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에서 권력과 부를 가지려면 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토머스 제퍼슨과
외삼촌의 조언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제임스는 토머스 제퍼슨 밑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그를 평생의 친구이자 정치적 멘토로 삼게 됩니다. 나중에 제임스는 토머스 제퍼슨의 대저택 몬티첼로
옆에 있는 농장을 사서 이사를 올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토머스 제퍼슨 역시 제임스에 대해
'너무 정직해서 그의 영혼을 뒤집어도 그의 영혼에 흠집이 없을 것이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깊이 신뢰했다고 합니다.
정치에 입문하다.
제임스는 1780년부터 1783년까지 법학을 공부했는데 그러던 중 1782년엔 버지니아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엔 연방 의회 의원으로 선출돼 차근차근 정치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결혼 후 제임스는 버지니아 프레데릭스버그로 이사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는데 다음 해인 1787년엔 버지니아 하원의원
재선에 성공하며 변호사로 또 정치인으로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790년 제임스는 상원의원에 출마하여 선출이 됩니다. 당시 미국 하원의원으로 있던 제임스 메디슨과 국무장관으로 있던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반연방주의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며 이들과 함께 1792년엔 민주공화당을 창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794년 37세의 제임스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의해 프랑스 외교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사실 조지는
제임스가 자신의 정책에 대해 많은 반대를 하는 것을 알았지만 제임스가 친프랑스파였기 때문에 프랑스와의 관계를 개선
시켜줄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임스가 프랑스 공사가 되자 프랑스와의 관계도 금방 나아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794년 11월 19일 미국은 영국과 제이조약이라는 통상 협정을 맺게 됩니다.
정치가로서의 성장
제이조약에는 미시시피강을 영국에 개방한다는 것.
영국 적국의 사략선에 보급을 금지한다는 것.
미국 독립전쟁 이전의 미국 부채를 영국 상인에게 지불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영국의 적국이라 함은 사실
프랑스를 뜻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는 미국이 프랑스와 맺은 동맹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 소식에 제임스는 내가 알고 있던 가장 수치적 화해라며 제이조약을 맹비난했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자 했던 조지의 눈 밖에 나며 1796년 프랑스 대사에서 파면 돼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퍼슨 정부에서의 활약
이후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가 변호사를 하며 잠시 정치적으로 암흑기를 보내게 된 제임스
1799년엔 버지니아 주지사로 당선이 되기도 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1803년 자신의 정치적 멘토인 토머스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제임스도 다시 화려하게 중앙정부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토머스 제퍼슨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인 루이지애나 매입 건도 제임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토머스 제퍼슨은 루이지애나 매입을 위해 제임스를 프랑스로 파견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제임스에게 최대 900만 달러에
웨스트 플로리다와 뉴올리언스를 사라고 명령했는데 제임스는 1,500만 달러에 루이지애나 전체를 사버린 것입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제임스의 결단에 매우 만족하며 새로운 영토에서 초대 총독을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이를 거절하고 영국 대사로 유럽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영국의 대사가 되어 영국과 미국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먼로-핑크니 조약을 작성하게 된 제임스
그런데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과 국무장관 제임스 매디슨의 반대로 인해 조약은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제임스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1807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808년 토머스 제퍼슨의 임기가 끝나고 열린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제임스는 동료였던 제임스 매디슨과
대결을 하게 됩니다 . 선거 결과 제임스는 제임스 매디슨에게 지고 말았고 가뜩이나 자신의 조약을 반대했던 건으로
마음 상해있던 제임스는 제임스 매디슨과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얼마 되지 않아
토머스 제퍼슨이 적극적으로 중재를 나서며 둘은 화해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되다.
이후 1811년 제임스는 버지니아 주지사 재선에 성공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제임스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국무장관으로 있던 중 1812년 미영전쟁이 시작되면서 제임스 매디슨은
제임스에게 전쟁 장관까지 부탁했습니다. 제임스는 미영전쟁을 통해 자신의 전투 경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대중들에게도 자신의 인지도를 확 높일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물론 아주 길지 않은 기간이긴 했지만 미국
역사상 두 직책을 동시에 역임한 사람은 제임스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1815년 미영전쟁이 끝이 나고 1816년에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제임스는 자신의 능력과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미국의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됩니다.
대통령으로서 활약
그리고 1817년 3월 4일 제임스는 야외에서 대중들에게 취임 연설을 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또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두 차례의 친선 투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증기선을 타고 여행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제임스는 반대파와도 타협을 하고
그들의 의견도 잘 수용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서도 싸움의 대상이 아닌 보호자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에 건너온 노예들을 다시 아프리카에 재정착 시키는 것만이 연방의 대립이나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며
해방된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고 그들이 건국한 나라인 라이베리아의 독립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라이베리아는 1847년 독립한 이후 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따 수도를 몬로비아로 지었다고 합니다.
두 번의 재임기간 동안 미주리주를 포함한 5개의 새로운 주가 미국에 합류했으며 또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인수하여 미국의 영토를 넓히고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최대 업적이자 미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 먼로 독트린이 탄생하게 됩니다.
사실 스페인에게 플로리다를 양도받을 무렵 아메리카 대륙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중남미의 많은 식민지국들이 미국처럼 독립 전쟁을 일으켜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멕시코 등
독립 국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이런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유럽이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세력을 뻗치진
않을까 걱정이 됐던 제임스는 토머스 제퍼슨, 존 퀸시 애덤스 등과 상의한 끝에 1823년 겨울 의회 신년 메시지로
먼로 독트린을 발표하게 됩니다.
유럽 국가가 중남미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겠으며 이를 어길 시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역시 유럽 영토나 그들 사이의 전쟁에 간섭하지 않을 것
이라고 약속했습니다. 한마디로 대서양 위에 선을 쫙 긋고 여기 서쪽은 아메리카 영역이니 유럽은 넘보지 말라고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신세계의 구세계로부터의 독립을 널리 선포한 먼로 독트린은 국제관계에서 천명된 미국 최초의 독트린이었으며
미국 외교정책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존 F. 케네디 등 후대의 미국 대통령들도 먼로주의를 이어받으며 지금도 미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먼로 독트린 덕분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825년 성공적으로 두 번째 임기까지
모두 마친 제임스는 아내와 함께 버지니아로 은퇴를 합니다. 1830년 아내가 사망한 후 제임스는 딸과 함께 살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멘토 토머스 제퍼슨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5년 후인
1831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74세의 제임스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총정리
제임스 먼로는 미국 독립전쟁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세세한 미국이라는 다양한 나라들이 모여 이룬 국가를 하나로 뭉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영향력을 벗겨내기 위한 먼로 독트린 선언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므로 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선대의 대통령들의 노력과 마지막의 제임스 먼로의 노력이 섞여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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