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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알아볼 인물은,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슨 제퍼슨과 함께 미국 건국의 4대 아버지라 불리며, 미국 독립선언서의 서명자이기도 한 존 애덤스입니다. 존 애덤스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청렴하고, 도덕성이 높은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은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항목 | 내용 | |||||
존 애덤스의 출생 | 1735년 10월 30일, 매사추세츠 만 신민지 브레인트리 | |||||
존 애덤스의 사망 | 1826년 7월 4일, 매사추세츠 주 브레인트리 | |||||
존 애덤스 재임기간 | 1789년~1797년, 제 2대 대통령 | |||||
존 애덤스의 유언 | 권력은 견제 없이 주어져선 안된다. | |||||
존 애덤스에 대한 평가 | 세계 최초의 부통령, 세계 최초로 당적을 가진 대통령, 세계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통령이며, 정권교체를 당한 대통령이기도 하며, 미국 대통령중 가장 청렴하며, 도덕적인 대통령. |
존 애덤스의 어린 시절
1735년 10월 30일 , 미국 매사추세츠 주 브레인트리에 살던, 아버지 존 애덤스 시니어( John Adams Sr.) ,
와 어머니 수잔나 애덤스( Susanna Boylstom)의 사이에서 삼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존 애덤스. 그의 가문은 1638년 영국에서 매사추세츠로 이주한 청교도 가문이었는데, 존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신발 제작자로 집안은 부유헀습니다. 어린 시절 존은 아버지의 농장에서 자유롭게 자라며, 아빠처럼 농부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인 존이 교육을 잘 받아 목사가 되길 바랐습니다. 존의 부모님들은 둘 모두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후 존은 아버지에게 읽고 쓰는 법을 배운 후 7살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어린 시절
1. 존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을 때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밖에 나가 놀기를 원하는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2. 특히 사냥을 좋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가 사냥을 즐겼다고 합니다.
3.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공부머리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존을 라틴어 학교로 보내 하버드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4. 그리고 아버지의 예상대로 성적은 꾸준히 상승형을 보이며, 결국 17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5. 하버드 생이 된 존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수학, 자연과학등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또 말하기 동아리도 가입하여, 친구들은 종종 존에게 변호사를 해보라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6. 이후 1775년 문학 학사 학위를 따고 하버드를 졸업한 21살의 존은 아버지가 원했던 목사 대신 자신의 꿈인 변호사를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저명한 변호사 밑에서 일하며 법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변호사로서 살아가다.
이후 1758년 24살의 존은 드디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턴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그렇게 법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존은 이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아직 식민지로 있던 미국사회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로의 주요 사건들
1. 1765년 영국이 만든 인지세법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인지세 법이란 영국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재정상황이 나빠지자 식민지에서 과세를 강화하여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만든 법 중 하나인데 이걸 거의 10배를 올려버린 것입니다.
2. 이때 존은 신문 사설과 에세이를 통해 영국의 행태를 고발하고 반 인지세법을 취소시키기 위한 투쟁을 하며 정치에도 서서히 참여하게 됩니다.
3. 이후 몇 년 뒤 존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1770년 3월 5일 영국군들이 쏜 총에 의해 5명의 보스턴 시민이 사망한 이른바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누구도 영국군을 변호하고 싶지 않아 했는데 이때 존이 나서게 됩니다.
4. 존은 영국군들도 공정한 재판을 위해 정당한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이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5. 존은 이후 재판에서 영국군들은 흥분한 채 몰려오는 관중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영국군들에겐 가벼운 처벌이 이어지며, 결국 존의 변호가 인정이 되었습니다.
6. 이후 초반엔 왜 변호했냐며 비난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관중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줏대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보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치에 발을 들이다.
재판 이후 보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가 된 존은 그 인지도를 이용하여 매사추세츠 주의회에서 시의원으로 선출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후 마흔 살이 된 존은 미국 독립을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대륙회의에 매사추세츠 대표로 선출이 돼 필라델피아로 향하게 됩니다.
미국의 독립
1. 그렇게 존은 1776년 토머스 재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과 함께 독립선언문 기초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미국의 독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며 노력하게 됩니다.
2. 이후 1778년 존은 외교관이 되어 프랑스 파리로 파견을 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지원과 협조를 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게 됩니다.
3. 그러다 1780년 잠깐 미국으로 귀국하여 매사추세츠 헌법의 기초를 작성하는 작업에 참여했고, 이 헌법은 인간의 자연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세계 최초의 성문헌범이자, 8년 후 만들어질 미국 헌법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4. 그사이 미국의 독립전쟁은 막바지에 이르고, 미국은 파리에서 영국과 독립 협상을 진행하게 됩니다.
5. 이때 존은 벤처 프랭클린, 존 제이와 함께 협상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6. 그리고 마침내 1783년 존은 미국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파리 조약에 서명한 세 명의 미국인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최초의 부통령, 그리고 역대 2번째 대통령.
미국이 독립한 뒤 존은 영국에 남아 미국의 첫 영국 대사가 되어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일을 했으며, 미국이 다른 나라와 상업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외교관으서 활약하며 지내게 됩니다. 이후 헌법이 작성된 직후인 1788년 존은 유럽에서 거의 10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54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존은 그제야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이후 존은 1789년 미국에서 치러진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는데, 조지 워싱턴에 이어 2번째로 많은 표를 얻음으로써 미국 역사상 최초의 부통령이 됩니다. 이후 1789년부터 1779년까지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지내게 됩니다.
대통령 생활, 마지막
1. 하지만 존은 부통령 자리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습니다.
2. 이후 조지 워싱턴이 물러나자 존은 다시 한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경쟁자였던 토머스 제퍼슨을 단 3표 차이로 이기며 미국의 2번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3. 하지만 그의 대통령 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단 3표 차이로 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부통령이 됐는데 독립운동을 할 때까지만 해도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독립 이후 미국의 정체성과 발전 방향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완전히 틀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4. 이후 토머스 제퍼슨은 임기 4년 내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5. 이후 존이 재선에 실패하자 자기 쪽 라인 사람을 대법원장에 올렸고,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자, 정부는 사법부와 사사건건 부딪혔는데, 이후 이건 3권 분립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냅니다.
6. 이후 존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성공적으로 재선까지 마친 제퍼슨에게 편지를 보내며, 둘은 화해를 하게 됩니다. 이후 14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고, 결국 같은 날 둘을 사망하게 됩니다.
총정리
존은 미국에서 대통령 중엔 존재감이 많이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그렇게 단순히 취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미국의 독립가로서 한 축을 담당했고, 이후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으며, 미국 초기 혼란스럽던 시기 미국을 지금 같은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엔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내용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죠. 이런 미국인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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